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쿠가와 이에야스 (문단 편집) === 감정 조절의 달인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생애 중반까지 엄청나게 굴욕을 많이 당했다. [[다케다 신겐]]과의 전투에서 바지에 똥을 쌀 정도로 극에 달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맞붙어 이겨놓고도 명분이 서지 않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휘하로 들어가는 등 생각보다 치욕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상당히 쿨했다. 다케다 신겐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짓밟히고 바지에 똥을 싼 일을 부하들에게 시켜서 그 모습을 초상화로 남겼고 심지어 석상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매일같이 쳐다보면서 항상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위에 나왔듯 신겐과의 싸움은 자신 가문 가신들과 오다 가문의 가신들이 말렸는데 괜히 [[객기]]때문에 싸웠다 깨진거다.] 굴욕을 당했다고 해서 열폭을 하는 게 아니라 그 굴욕에 대해 연구를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밑으로 들어가는 굴욕을 당하고 게다가 나이 40살도 넘고 별로 미인도 아닌 [[아사히히메]]와 강제로 결혼하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을 때도 '이제 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열폭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천천히 생각하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게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강제로 전봉당했을 때는 '원래 있던 곳에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남겨놓고 그대로 얼굴마담을 하자. 그리고 새 영지에서 내 이름을 선전한다.'라고 생각하며 양쪽 모두에서 인지도를 유지했다. '''그 결과는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였다.''' 덤으로 이 전봉을 핑계로 [[임진왜란]]을 땡땡이 쳐서 자기 세력을 그대로 보존한 데다가 무익한 조선 정벌에 출병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는 이유로 얻은 역량 보존과 [[인망]]으로 인해 [[일석이조]]까지 따냈다. 거기에 더해서 훗날 임진왜란에 한명의 병사도 보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조선통신사]] 파병을 요청하였고 이렇게 일본을 방문하게 된 조선통신사를 '외국에서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을 인정한다'라는 취지의 대대적인 선전 수단으로 활용했기에 일석삼조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굴욕을 참는 능력이 남달리 강했고 그게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더욱 냉철한 판단력으로 무장시켰다. 그리고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냉철한 판단력은 그를 일본의 지배자로 만들어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